이텐에서 나이로비로 돌아가려면 두 가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먼저, 마타투를 타고 엘도렛으로 간다. 엘도렛에서 다시 대형 버스를 타고 6시간을 달려 나이로비에 도착하는 일정. 마타투는 케냐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으로, 우리나라의 버스 역할을 한다. 특이한 점은, 사람이 가득 차기 전까지 출발하지 않는다는 점! 승객을 호객해서 데리고 오는 방식인데, 출발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일단 엘도렛에 도착한 뒤, 시간을 보고 다음 일정을 생각하기로 했다.
2주 묵었던 숙소 사장님께 인사를 드린 뒤 짐을 챙겼다. 떠나는 날까지 날이 흐리다니, 이 얼마나 상징적이냐. 5분 정도 걸어 도착한 마타투 정류장엔 역시나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어떤 차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다. 그렇게 길 잃은 고라니처럼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호객남(원래는 호객꾼이라고 부르지만, 이번엔 정말 도움을 받았으니)가 나타났고, 엘도렛행 마타투에 몸을 실었다.
역시… 좁다. 좋은 점은 탑승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출발했다는 것. 나쁜 점은, 사람이 이미 꽉 차 있었다는 점. 차량 뒷문 쪽 가장 가장자리 자리를 배정 받았는데, 덕분에 문을 열고 닫는 역할도 수행했다. 그래도 좀 익숙해졌는지, 북적이는 마투투에 앉은 내 모습이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이곳에 오기 전엔 마타투에 타는 것도 긴장됐는데, 뭔가 실력이 늘긴 늘었나 보다.
사진 찍기도 어렵다.
그렇게 1시간을 달려 도착한 엘도렛. 아무래도 오늘 바로 나이로비로 넘어가는 건 어려워 보여, 마트에 가서 장을 본 뒤 버스를 예매하기로 했다. 그렇게 대형마트에 들어갔는데… 이게 참 감격스럽더라. 경호원이 있고, 넓고 쾌적하고, 아무도 나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 공간. 고작 2주 문명(?)과 떨어져 있었는데, 이게 참 감격스러웠다. 역시나 나는, 28년간 쾌적한 환경에서 살아온 뼛속까지 한국인이란 걸 다시 한번 느낀 순간이기도 하다.
이 당연함이 그리웠다.
이텐마을에서 물건을 구매하려면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 대형마트는 당연 없고, 우리나라 문방구 느낌의 소규모 상점이 다수 존재한다. 점원에게 물건 이름을 말하면 찾아서 가져다주는 방식인데, 나는 물건 이름도 가격도 모르니까… 매번 설명하고 의심해야 했다. 엘도렛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도시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비슷한 대형마트가 존재한다. 그동안 얼마나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었는지, 사소한 감사함이 차올랐다.
#편안한 게 좋긴 좋다
장을 본 뒤 버스를 예매하러 갔다. 내일 아침 떠나는 걸로 구매 완료. EASY COACH라는 대형 버스인데, 6시간 거리 나이로비까지 가격은 한화로 약 15,000원이다. 마타투로 가면 8,000이니까, 2배 정도 비싸다. 즉, 이 동네에선 꽤 고급스러운 교통수단이다. 그래서 예매 과정도 체계적이고 티켓도 믿을만했다. 내 이름이 적힌 티켓을 받는 게 믿음직스러웠다. (마타투는 기억력으로 모든 일을 처리한다)
다음날 아침, 드디어 나이로비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넓고 쾌적한 좌석. 다른 승객들을 보니, 대부분 머리카락이 길다. 케냐 흑인들은 유전적으로 머리가 곱슬이라, 머리가 길게 자라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긴 흑인들은 펌을 했다는 건데, 비싸다. 여기 타 있는 승객 대부분인 상류층이구나.
잠에 드려던 찰나, 익숙한 노래가 들렸다. 이거 블랙핑크 노래인데? 부모와 함께 탄 어린아이들도 있었는데, 스마트폰으로 K-POP영상을 본다. 신기하다! 확실히 다시 도시로, 편안한 곳으로 돌아가고 있는 게 맞다.
#케냐 마지막 일정
오후 6시, 나이로비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바로 숙소로 들어가 짐을 풀고, 한 숨 쉬었다. 며칠 전까지 이텐 마라톤 마을에 있었다는 게 꿈같다. 책으로만 봤던 곳을 직접 갔다 오다니. 이텐에서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 경험이 가슴 깊이 내려앉아 결론으로 나타날 때까지 꽤나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나이로비의 밤
마지막 일정은, 사파리 투어로 정했다. 그래도 아프리카에 왔으면 사파리는 보고 가야지! 마침 이집트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났던 하준이와 일정이 맞아서, 같이 투어를 가기로 했다. 익숙한 환경에서 한국인 친구와 함께한다. 다시 현실로 돌아왔구나.
[소개글] 서성구는 만 28세로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해병대 장교로 전역 후, 2024년 7월부터 세계여행을 떠났다. 이집트, 아프리카 케냐, 유럽을 거쳐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행한 그는, 현재 미국 자전거 종주를 준비 중이다.
매주 연재되는 '성구형의 세계여행'은 서성구의 모험과 도전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각 에피소드는 조금은 긴 글로 구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