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마을 여행을 마친 뒤 다시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아침엔 헬스장에 가서 스왈리랑 운동을 한다. 이후 숙소에 돌아와 밥을 먹고, 오후엔 달리기를 한다. 저녁을 먹고 글쓰기와 영상편집 후 잠에 든다.
한 가지가 빠졌다. 아프리카 케냐 이텐마을, 이곳을 온전히 느끼는 것. 이게 더욱 자신 없어진 건, 스왈리네 가족을 만나고 온 뒤부터였던 것 같다.
스왈리 친형네 신발장. 대가족이라 신발도 많다.
너무 다르다. 생각하는 것, 살아온 방식, 문화와 가치관까지 다르다. 피부색만 다른 줄 알았는데,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확실한 거리감이 존재한다. 그저 ‘사람들이랑 친해지면 적응되겠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했던 내가 어처구니없을 정도.
어느 날, 스왈리가 제안했다. 자취방을 옮길 생각인데, 몇 주 같이 지내는 게 어떻냐고. 월세를 같이 내면 돈을 아낄 수 있다는 이유였다. 당시 내 숙소 월세가 50만 원 정도였는데, 스왈리네 자취방 월세는 5만 원도 채 되지 않았으니까, 합리적인 제안. 외국인이라 바가지(?)를 당하고 있는 나에게 마음이 쓰였던 거 같다.
하루 고민을 한 뒤, 거절했다. 도저히 같이 살 자신은 없더라. 너무나도 다르니까. 솔직히 말하면, 내 안전이 걱정됐다.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노트북과 휴대폰만 해도 200만 원쯤 된다. 월 5만 원짜리 방에 사는 스왈리에게 200만 원은 그 이상의 가치니까. 내가 그를 100% 신뢰할 수 있을까? 못한다.
이사 갈 뻔했던 자취방
이때부터 이텐마을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던 것 같다. 애초에 서로 친해지려면, 조금 더 있는 그대로를 들여다보려면, 각자가 가진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정작 스왈리는 자신의 것을 내놓으면서 나를 기다려줬는데, 나는 여전히 한 발 물러서 있었다. 아니지. 애초에 지금의 경험을 콘텐츠로 사용하려는 내가, 그들의 삶에 녹아들겠다는 마음 자체가 기만이지 않을까. 그들은 나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보고 있는데, 나는 아니잖아.
#나 여기 왜 왔지
아프리카를 경험하면서, 마라톤도 배운다. 이 2가지의 단순한 이유가 나를 이텐마을로 이끌었다. 첫 번째 이유는, 내가 생각했던 모습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달성했다. 그렇다면 이제, 마라톤을 통해 남은 이유를 찾아보기로 했다.
마라톤. 현지 선수들과 함께 달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매일 새벽 선수들이 마을 입구에 모여 가벼운 조깅을 하는데, 그냥 자연스럽게 끼면 된다는 이야기. 그래서 아침 6시쯤 마을 입구에 갔는데 정말로 몇십명이 선수들이 그룹별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고, 나도 자연스럽게 그룹에 합류했다.
선두 그룹. 따라가면 큰일 난다.
나의 그룹은, 무려 중학생 여자 선수! 그마저도 최근에 부상을 당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천천히 뛰는 선수들이었는데, 나와 수준이 딱 비슷했다. (1시간에 10km를 달리는 페이스)
달리면서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이야기라기 보다는, 아주 간단한 잡담들. 오늘 날씨가 어떻고, 이따 점심에 뭐를 먹을 거고 등등.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쿵푸’를 배워봤냐면서 꺄르륵 거리는 선수들을 보니, 중학생 여자아이들이긴 하더라. (근육과 포스는 그 이상이었다)
간단하게 1시간 조깅을 마치고, 기념 사진을 찍으며 달리기를 마무리했다. 느낀 점은, 이들에겐 그저 지금이 ‘일상’이라는 것. 크게 특별한 점은 없었다.
사진 찍을 땐 또 영락 없이 아이들이다.
며칠 전 만났던 패트릭 고등학교의 마라톤 코치의 말이 떠올랐다. 달리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잘 먹고 잘 자는 거라며, 운동은 그다음이라고. 선수들과 함께 달리며 그 말의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들에게 달리기는 특별한 목적이나 목표가 아니라, 그저 삶의 일부였다. 반면, 나는 이 경험을 하나의 콘텐츠로 소비하려는 목적이 강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과 달리면서 느낀 미묘한 거리감이 떠날 결심을 더욱 굳혀 주었다.
#이텐마을을 떠났다.
다음날, 마지막으로 혼자 달렸다. 선수들과의 달리기는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좋은 기회였지만, 이번엔 나의 속도를 찾고 싶었다. 새벽 이텐의 흙길을 천천히 달리며, 이곳에서 보낸 시간을 떠올렸다.
마라톤 코치와의 만남, 스왈리와의 여행, 마지막 선수들과 달리기까지. 2주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지만, 결국 그들의 삶에 온전히 녹아들지는 못했다. 최소 1달은 버티기로 해놓고, 벌써 떠나다니.
그러나, 이를 실패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와 너무 다른 환경 속에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나의 한계를 직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1시간가량의 달리기를 마쳤다. 짐을 챙겼다. 마타투에 몸을 싣고 다시 케냐의 수도인 나이로비로 향했다.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던 질문들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앞으로의 여행 끝에 정답을 찾아내지 않을까.
마지막 날 만난 꼬마 천사들
[소개글] 서성구는 만 28세로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해병대 장교로 전역 후, 2024년 7월부터 세계여행을 떠났다. 이집트, 아프리카 케냐, 유럽을 거쳐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행한 그는, 현재 미국 자전거 종주를 준비 중이다.
매주 연재되는 '성구형의 세계여행'은 서성구의 모험과 도전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각 에피소드는 조금은 긴 글로 구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