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재개발을 앞둔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입구에 주민 및 관계자들이 망루를 설치하고 거주사실확인서 발급 등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안에 구룡마을 주민들을 인근 임대주택으로 이주시킬 계획이지만, 주민들은 분양권 등의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자료: 연합뉴스)
서울 강남 한복판의 마지막 판자촌으로 알려진 구룡마을이 재개발을 앞두고 격렬한 갈등에 휩싸였다. 일부 주민들은 철제 망루를 세우고 농성을 이어가며 분양권과 토지 소유권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서울시는 법적 기준을 내세워 임대주택 제공을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주민들의 반발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구룡마을 입구에는 주민들이 세운 망루와 함께 “우리를 내쫓지 말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걸렸다. 망루 위에서는 다섯 명의 주민이 숙식을 이어가며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에 항의를 이어가고 있다. 주민들은 30~40년간 살아온 터전에서 쫓겨나는 데 대한 최소한의 보상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분양권을 요구하고 있다. 일부는 자신들이 살던 땅을 싼값에 매입해 지역주택조합을 구성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서울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서울시는 1989년 1월 24일 이전부터 거주한 주민들에게만 분양권을 부여하고, 그 외 주민들에게는 임대주택과 이주비를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 기준이 자신들을 배제하기 위한 편법이라고 주장한다. 한 주민은 “다른 지역에 살던 사람도 임대주택 신청을 하면 들어갈 수 있지만, 우리는 수십 년간 살아온 집을 내주고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주민은 고령의 주민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임대주택으로 이주해도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서울주택도시공사 측은 “항공사진 등을 통해 당시 구룡마을의 건축물이 비닐 간이 공작물에 불과했음을 확인했다”며 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주민들에게 분양권을 제공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주민은 “비닐 간이 공작물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고 키우며 대학까지 보낼 수 있었겠느냐”며 “우리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지난 24일에는 망루를 세운 주민 중 일부가 도시개발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연행되며 갈등이 더욱 심화됐다. 경찰은 망루가 불법적으로 설치된 데다 안전 문제가 우려돼 철거를 요구했지만, 주민들은 물러설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서울시는 자진 철거를 유도하며 대화를 통한 해결을 시도하고 있지만, 주민들의 반발이 계속되면서 양측의 대치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구룡마을 사태는 재개발 과정에서 소외된 계층이 겪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가 한국 도시 개발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며 소외 계층을 배려하는 체계적인 보상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망루 위에서 벌어지는 주민들의 저항은 그들의 절박함을 단적으로 드러내지만, 이 갈등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해소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