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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형의 세계여행] EP13. 케냐에서 마주한 타인의 삶

[서성구] 성구형의 세계여행

by 시사 IMPACT 2024. 10. 21.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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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과의 만남

케냐 게스트 하우스에서 머물고 있던 한국인 교수 부부. 하우스 거실에서 마주친 우리는 서로 간단한 자기소개 후 소파에 앉아 본격적인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남편분은 미국 대학 교수로, 안식년을 맞아 해외 연구 활동을 겸해 케냐에서 머무는 중이었다. 29살인 내가 아직 직업을 정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는, 본인도 30살 때 해외에서 석사 과정을 시작했다며 대학원 유학을 적극 권장했다. 그렇게 하우스에서 함께한 1박 2일 내내 나를 독려하며 명함까지 건네준 교수님.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매일 고민한다. 교수님이 말한, 교수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명예롭고 수입도 괜찮으면서, 안락한 노후까지 기대할 수 있는 이상적인 삶. 실제로 케냐에서 머무는 동안 교수님은 주에 2일 출근하고, 나머지 5일은 집에서 연구를 하거나 골프를 친다고 했다. 심지어 월급은 두 배! 안식년 월급에 해외 연구활동비까지 받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게 안 끌린다. (물론 끌린다고 교수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삶은 도대체 어떤 형태일까.

특이한 지점이 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공통으로 기피했던 ‘한국의 경쟁사회’. 교수님 또한 꼭 ‘해외’에서 교수가 되라고 강조하면서, 한국의 경쟁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역설했다. 그래서 의문이 든다. 왜 벗어나야 하지?

한인 게스트 하우스가 모여있던 이집트의 다합. 한국의 경쟁사회에 지쳐 떠나온 이들이 많았다.

 

#한국의 경쟁사회

만으로 27년을 한국에서 보냈다. 그리 오래 산 건 아니지만, 한국이 어떤 사회인지 느끼기엔 충분한 시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이어, 나는 삼수까지 하며 대학에 갔다. 덕분에 한국 사회에서 경쟁이, 남들보다 잘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여실히 느끼며 살았다.

한국의 경쟁사회가 싫지 않다. 경쟁에서 중요한 학벌, 외모, 돈, 그리고 여기서 파생된 학벌주의, 외모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에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는다. 싸워서 이기면 그만이니까. 오히려 열심히 살아가는 데 큰 동기부여로 작용한다.

학벌의 경우 경쟁에서 이겨 쟁취했기 때문에. 외모는, 인생에 흠이 될 정도는 아니라서. 물려받은 돈은 없지만, 앞으로 많이 벌면 된다. 그래서 경쟁은 여전히 즐겁고, 빨리빨리 문화가 낳은 여러 인프라에 오히려 감사함을 느낀다.

공항에 갈 때마다 한국의 인프라가 얼마나 대단한지 느낀다.

포식자의 기만으로 들릴 수도 있다. (포식자가 아니긴 하다) 해외 여행지에서 한국 사람을 만날 때마다 들었던, “외국은 한국과 달리 치열하지 않아서 좋아요”라는 말에 ‘내가 이상한 건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되물을 수 있다. 이런 한국의 경쟁 문화가 이룬 성과 덕분에, 떵떵거리며 해외를 다닐 수 있지 않냐고. 비자 문제없이, 어디서든 로밍 가능한 휴대폰으로, 마음만 먹으면 목돈을 모아 해외로 나올 수 있는 국가가 세계에 또 어디 있을까.

#개인이 바라는 삶

분명한 단점은 존재한다. 쉴 틈 없는 경쟁 구도 속에 휩쓸려 다니기 쉽다는 것. 나만의 가치를 찾아가기 전에,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에 끌려가기 바쁘니까. 그러나 이 또한 개인의 몫이라고 본다. 사회를 원망하는 것보다, 내가 정신을 차리는 게 효율적인 방법이니까.

교수님의 삶이 매력적이지 않았던 이유는, ‘나만의 가치’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월급이 어떻고 휴일이 며칠인지 보다, 왜 연구를 하고, 그 연구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가 더 궁금했다. 교수님의 시야에선, 29살 한국인 남성인 내가 연구의 가치보단 돈과 여유에 관심 있을 거라 예상했던 거 같다. 물론 안락한 삶도 중요하지만, 이를 1순위로 두고 좇아가다 보면 중심을 잃지 않을까 라는 의심이 들었다. 

나도 언젠가 안락함을 추구하는 순간이 올지 모른다. 현재의 삶을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온 교수님이 존경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의 삶을 미루고 세계여행을 떠나온 이유이기도 하고. 

케냐에서 마주한 교수님의 삶을 통해, ‘내가 바라는 삶’에 대한 생각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 예상에 없던 만남이었지만, 이 또한 여행이 선사하는 기회가 아닐까. 

게스트 하우스를 떠나기 전 찍은 사진. 짐은 무겁지만 마음은 가볍다.


[소개글] 서성구는 만 27세로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해병대 장교로 전역한 후, 2024년 7월부터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1,000만원의 예산으로 대륙별로 한 달씩, 총 1년 동안 각국을 여행하며 다양한 도전과 경험을 쌓고 있다. 여행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스탭, 봉사활동 등의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순례길 걷기, 마라톤 참가, 히말라야 트레킹 등 여러 챌린지에도 도전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되는 '성구형의 세계여행'은 서성구의 모험과 도전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각 에피소드는 조금은 긴 글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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