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밤을 보냈다. 어제 나이로비의 숙소에 도착 후 새벽 2시에 침대에 누웠는데, 4시가 다 되어서야 잠에 들었다.
일단, 문밖의 소음. 객실 밖 통로에서 (아마도) 케냐 형님이 통화를 하고 있었다. 엄청 심각해 보이는, 거대한 목소리로. 나가서 한마디 하려다가 봐줬다. 사실 소심하게 방문을 한 번 열고 닫았는데 신경도 안 쓰더라.
그리고 모기. 케냐 모기는 스나이퍼다. 안 보이고 안 들린다. 그런데 문다. 진짜 계속 문다. 한 10방은 쏘였다. 간지러워서 잠을 못 자겠더라. 침대 주변에 모기장이 있지만 뚫려있다.
오전 10시에 일어나서 다음 숙소를 향해 이동했다. 거리는 약 6km. 열심히 걸으면 1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오늘 시내에서 시위가 있다고 했는데, 마침 밖에서 폭탄(?) 소리가 들린다. 무서워서 카운터 직원한테 물어봤는데, 괜찮다고 한다. 그래서 거리로 나갔는데… 비가 오고 있었다. 아, 천둥소리였구나?
그렇게 앞뒤로 가방을 메고 걷기 시작했다. 오늘은 어제보다 많은 사람이 길거리에서 말을 걸었다. 헬로우 재팬, 헬로우 차이니즈! 왜 헬로우 코리안이라고는 안 해주지. 그래도 케냐 사람들은 점잖은 것 같다. 싫다고 하면 안 한다. 따라오지도 않는다. 착한 사람들!
또 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코랑 눈이 엄청 맵다. 이건…. 군대 화생방 냄샌데? 거리를 둘러보니까 경찰이 엄청 많다. 아, 아까 폭발음이 최루탄 소리였구나. 다시 보니까 사람들이 다 마스크를 끼고 있다. 하지만 해병대 정신을 발휘해서 꾹 참고 거리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심하진 않았다. 양파 깔 때 눈물 나오는 정도)
3km쯤 걸으니 거리가 한산해졌다. 조금 잘 사는 동네로 넘어온 것 같다. 신기하다. 30분 전까지는 동묘 시장 느낌이었는데, 갑자기 강남으로 바뀌었다. 중간에 신당이나 약수도 끼어있어야 하는데, 이곳은 그냥 극과 극이다. 이번 동네에서는 지나가는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사람들 옷차림도 다르다. 비싼 옷들!
그렇게 도착한 새로운 숙소. 짐을 풀고 침대에 누웠다. 이불에 들어가 4시간 동안 시체놀이를 했다. 아이구 진 빠져.
하루 15,000원짜리 숙소. 2평짜리 공간이었지만 이보다 아늑할 수 없다.
저녁이 되어서야 숙소에서 나왔다. 카페에 들어가 노트북을 켰다.
#열심히 흔들리는 중
인규형한테 카톡이 와있다. 이곳에 오기 전, 이집트 다합에서 같이 게스트 하우스 스탭으로 일했던 형. 1년 넘게 세계여행 중이다. 하여간 몇 주 전에 보낸 작별 인사에 이제야 답장을 주다니, 역시 내 스타일이다.
‘하고 싶은 걸 이뤄내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자기 삶의 뚜렷한 목적을 갖는 거야. 목표와는 차원이 다른, 삶의 목적. 이게 명확해지면 네가 하고 싶은 걸 이룰 수 있는, 아주 강력한 힘을 얻을 거라 생각해. 여행을 하면서 그 목적을 찾아나가길 기도할게.’
생각에 잠겼다. 내가 이곳에 와있는 이유가 뭘까. 케냐에서 머문 3일 동안 딱히 한 게 없다. 그저 하루하루 휩쓸리며 보냈다. 경험이 목표라면, 지금의 시간도 경험이라 할 수 있을까? 내가 이곳에 온 뒤 제대로 된 생각을 한 적이 있나. 그럴 여유가 없었다. 사색이 필요하다. 여행 중엔 온전히 나를 되돌아보는 게 쉽지 않구나.
오랜만에 일기를 쓴 날. 나름 고급 카페인데 얼마 안 가 정전이 났다.
케냐에 오기 전, 혹은 여행을 떠나기 전, 많은 의문이 있었다. 여행을 꼭 해야 할까? 이게 도움이 될까? 그럼에도 떠났던 이유는, 떠나기 전에는 알 수 없다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내가 만들어가기 나름’이라는 약간의 확신도 있었다.
지금은 나 또한 나의 행보에 의문을 느낀다. 이게 정말 맞나? 목적이 무엇일까. 아니, 목적이란 게 필요하긴 한가. 전혀 모르겠다!
이럴 땐 해결책이 있다. 당장 움직이는 것. 내일 바로 이텐 마을로 떠난다. 내가 케냐에 오고 싶었던 한 가지 이유.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내 눈으로 마주해보자. 나의 여정이 이들과 맞닿으면, 또 새로운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소개글] 서성구는 만 27세로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해병대 장교로 전역한 후, 2024년 7월부터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1,000만원의 예산으로 대륙별로 한 달씩, 총 1년 동안 각국을 여행하며 다양한 도전과 경험을 쌓고 있다. 여행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스탭, 봉사활동 등의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순례길 걷기, 마라톤 참가, 히말라야 트레킹 등 여러 챌린지에도 도전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되는 '성구형의 세계여행'은 서성구의 모험과 도전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각 에피소드는 조금은 긴 글로 구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