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텐 마을에 머무는 기간은 최소 1달로 정했다. 단순한 관광이 아닌, 마을 사람들 품에 녹아 그들의 삶을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마을, 사회, 케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마을의 마라톤 선수들을 따라 훈련을 했을 때, 4주는 있어야 변화를 체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 다른 관광지야 인터넷에 대충 쳐도 정보가 나오지만, 이텐 마을에 간다면 어디서 자고, 뭐를 먹고, 무엇을 입어야 할지 제대로 된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먹고 입는 거야 둘째 치고, 최소한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놓아야 하니까.
#현대화된 시골 마을
숙소 문제는 생각보다 어이없게 해결됐다. 그냥 에어비앤비에 검색하니까 나오던데…? 내가 알고 있는 마을의 수준(?)과는 전혀 달랐다.
‘마인드풀 러닝’이라는 책을 읽고 이텐마을에 가기로 마음 먹었다. 책의 저자는 이텐에서 머물기 위해 지인의 지인의 힘을 빌려 간신히 마을 주민의 집에 얹혀 살았다고 한다. 방의 상태는 당연 (한국에 비해) 좋지 않았고,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 매일 찬물로 샤워를 했다. 나도 이런 환경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하며 숙소를 알아봤는데, 최고급(?)이 떡하니 나타난 것.
저자 김성우 작가는 마라톤 코치로도 활동 중인데,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아(?) 그에게 마라톤 코칭을 받기도 했다.
저자가 이텐을 방문한 시기는 5년 전이었는데, 그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2019년 10월 케냐 마라토너 킵초게가 ‘이네오스 1:59 챌린지’에 성공하면서 세계적으로 더욱 유명세를 탔고, 이후 코로나가 종식되어 여행이 활성화 되면서 상황이 달려졌던 것. 마을 자체는 여전히 시골이었지만, 외국인 대상 숙박 시설이 눈에 띄게 늘어나 있었다.
그렇게 구한 첫 번째 숙소. 호스트가 무려 2018 파리 마라톤 챔피언인 벳시 사이나! 한국으로 치면 양궁 금메달리스트 기보배의 하우스에서 생활하는 느낌이다. 역시 챔피언의 고장이 맞구나!
챔피언의 고장, 이텐마을
숙소에 도착 후 직원의 도움을 받아 짐을 풀고 설명을 들었다. 이미 나와 같은 외국인을 많이 상대해 본 그녀는, 숙소의 패키지에 대해 설명해줬다. 추가로 15유로를 내면 삼시세끼를 제공해주는데, 운동을 하며 편안하게 영양 보충을 하기엔 최고의 조건이었다. 나 또한 당장 식당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에 당분간은 숙소에서 밥을 해결하기로 했다.
후에 알게 된 케냐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15유로면 마을에서 혼자 일주일은 지낼 수 있는 식비였다. 그러나 외국인에겐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금액이었고 전지훈련을 위해 이곳을 찾아온 대부분의 외국인이 이런 식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듯 했다.
4일간 밥을 차려줬던 직원. 나이는 나와 비슷했다
#날씨의 아이
문제는 날씨였다. 아프리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이곳은 전혀 덥지 않았다. 오히려 9월의 이텐은 건기에서 우기로 넘어가는 시점으로, 해발 2,400m 고지대 특유의 쌀쌀한 날씨와 간헐적인 비가 이어졌다.
옷이야 가방에 있으니, 예상보다 추운 날씨가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물론 나는 여름옷 위주로 챙겨와서 얇게 입고 다녔는데, 마을 사람들은 패딩을 입고 다녔기에 꽤나 시선을 받긴 했지만…! (나는 추위에 강하고, 케냐인은 아마 더위에 강하다)
그러나 날씨가 초래한 특유의 분위기가 나를 감쌌던 것 같다. 안 그래도 낯선 공간과 시선에 압박을 받는데, 날까지 우중충하니 위축되는 느낌. 정말 추운 날에는 낮에도 이불 속에 들어가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9월 이텐의 하늘. 마당에 빨래를 걸어놓는데 잘 마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운동은 꾸역꾸역 했다. 마을 운동장에 가서 선수들도 구경하고, 새벽 조깅에 따라 나서 같이 달리기도 했다. 동네 헬스장에 등록해 근력 운동도 하면서 열심히 보냈다. 이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안 하면 아깝잖아!
그렇게 이텐 마을에서 하루하루가 쌓여갔고, 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소개글] 서성구는 만 27세로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해병대 장교로 전역한 후, 2024년 7월부터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1,000만원의 예산으로 대륙별로 한 달씩, 총 1년 동안 각국을 여행하며 다양한 도전과 경험을 쌓고 있다. 여행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스탭, 봉사활동 등의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순례길 걷기, 마라톤 참가, 히말라야 트레킹 등 여러 챌린지에도 도전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되는 '성구형의 세계여행'은 서성구의 모험과 도전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각 에피소드는 조금은 긴 글로 구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