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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형의 세계여행] EP18. 조울증 환자의 하루

[서성구] 성구형의 세계여행

by 시사 IMPACT 2024. 11. 2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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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텐마을 적응완료?

나는 내가 어떤 환경에서든 잘 지낼 줄 알았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아프리카 케냐, 그중에서도 시골 마을. 그럼에도 이곳에서 경험하고 싶은 것이 존재하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원 없이 할 수 있는 환경이니까!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이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겠지. 마음을 나눌 친구도 없었다. 이건 친구를 사귀면 되잖아! 그렇게 약 일주일이 흘렀다. 사람들의 시선은 익숙해졌고, 같이 운동할 수 있는 현지인 친구도 생겼다. 마을 헬스장에 등록했는데 PT 선생님이 나의 또래라서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그러나, 약속된 일정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숙소에만 틀어박혀 있는 나를 발견했다. 

PT쌤과의 약속을 제외하면 굳이 밖으로 나갈 이유가 없었다.

 

#학습된 거구나

‘스스로가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인지 깨달았다. 본인 잘난 맛에 살았는데, 여행을 떠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무너지더라’. 이전 여행지 이집트 다합 게스트 하우스에서 같이 일했던 인규형이, 세계여행 2달 차 나에게 해줬던 말.

그런가? 나도 나에 대해 알고 싶어서 떠나온 여행이지만, 나의 자존감은 너무 높은걸…! 무너지진 않을 거 같은데 말이야. 

한국 사람 서성구는 명문대를 졸업했다. 친구, 선배, 후배 모두 명문대다. 열정적이고, 창의적이고, 능력 또한 출중한 사람들. 함께 5년을 보냈다. 반짝반짝 빛나는 그들이 미래가 기대됐다. 얘네들은 커서 뭐가 될까?

한 점으로 모였다. 대학원 혹은 취직. 물론 필요한 선택이다. 다만,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원해서 하는 게 맞나?’ 여전히 능력은 출중하다. 그러나 빛나진 않았다. 적어도 내 시야에선 말이다. 

왜지? 그렇게 열정적이고 창의적이던 사람들이, 왜 결국 가장 안전한 선택을 하는 거지. 그거 너가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잖아. 내가 이상한 건가

혼자 여행을 떠나왔다. 모든 일을 나의 힘으로 겪어내고 있다. 시간이 쌓여갈수록 뼈저리게 느낀다. 사실, 나도 위험을 회피하는 사람이구나. 야심 차게 도달한 아프리카 여행지에서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이 고작 숙소에 누워 있는 거라니. 심지어 침대의 아늑함이 나름 만족스럽기도 하다. 아, 본성이 이렇구나. 이 생각은 우울함으로 뻗쳐간다.

모기장이 아늑함을 더해줬던 것 같다.

 

밖으로 나갔다. 달렸다. 달리다가 힘들어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에너지가 생긴다. 밖으로 나온 김에 새로운 숙소도 찾아봤다. 원래 같으면 구글맵에 검색해서 찾아놨겠지만, 여기는 그런 거 없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물어본다. 

불확실에 도전한다. 그래, 내가 아는 나의 모습은 이게 맞는데. 이 순간에는 또 기분이 괜찮아진다.

갑자기 신나서 찍은 셀카

 

슬펐다가 좋았다가. 조울증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감정은 극과 극을 오갔다. 이런 모습이 며칠째 반복되고 있었다. 뭐가 나야 도대체

학습된 거구나! 원래의 나는 안전함을 추구하는 사람인데, 필요에 의해 습득한 기술이구나. 어떻게 습득했을까? 환경. 안전하게 도전하고, 안전하게 실패하고, 다시 해볼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조금씩 늘었다.

허무하다. 나는 나의 의지로, 내 생각으로, 오로지 나의 힘으로 성장해 온 줄 알았는데. 그냥 이렇게 만들어져 온거구나. 환경이 바뀌면 여전히 무너진다. 어디까지가 나의 것일까?

오히려 돌아다닐 때는 괜찮았다. 이텐마을에 와서 정착하기까지도 여전히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의식주가 해결되니까, 더 이상 도전할 필요가 없어지니까, 나의 본모습이 드러났다. 나는 내가 용감한 모험가인 줄 알았는데, 천성은 겁쟁이구나!

호랑이로 태어난 줄 알았는데, 호랑이 탈을 쓸 멍멍이였다. 탈은 누가 만든 걸까. 내 의지로 쓴 게 맞나. 그래도 뭐, 호랑이가 되고 싶은 멍멍이한테 희망을 줄 수는 있으려나. 

이 여행에서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걸 알게 될까.

 


[소개글] 서성구는 만 27세로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해병대 장교로 전역한 후, 2024년 7월부터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1,000만원의 예산으로 대륙별로 한 달씩, 총 1년 동안 각국을 여행하며 다양한 도전과 경험을 쌓고 있다. 여행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스탭, 봉사활동 등의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순례길 걷기, 마라톤 참가, 히말라야 트레킹 등 여러 챌린지에도 도전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되는 '성구형의 세계여행'은 서성구의 모험과 도전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각 에피소드는 조금은 긴 글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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