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텐 마을이라는 전혀 다른 환경. 여기서 살아가는 게 여전히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몇 가지 수확은 있었다. 나를 이곳에 오게 한 ‘마인드풀 러닝’이라는 책. 책의 작가님의 소개로 현지 마라톤 코치의 연락처를 받은 것. 메신저로 간단히 대화를 나눈 끝에 일요일 오전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막상 일요일 아침에 되니 귀찮아졌지만, 약속은 약속이니까 꾸역꾸역 나갔다)
#세계최고의 학교
약속 장소는 패트릭 고등학교(ST. Patrick’s High School)로, 이텐마을 중앙에 위치한 남자 기숙사형 학교였다. 1961년 설립된 학교는 여러명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보스턴 마라톤 3회 우승자 이브라힘 후세인 등 세계적인 마라토너를 배출한 곳이다.
코치님은 패트릭 고등학교를 졸업 후 마라톤 선수에서 마라톤 코치로 전향했고, 17년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의 소개를 받아 학교를 둘러본 뒤 근처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 2시간이 내가 이텐을 방문한 이유를 여실히 설명해주었다.
#고정관념이 박살났다
(이하 코치와의 대화 후 메모했던 내용) 운동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뭘까? 먹는 건 1번. 자는 게 2번. 운동은 3번 꼴찌!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배출한 마라톤 코치의 입에서 나온 첫 번째 문장.
활시위에 비유했다. 잘 먹고 잘 자기는 활시위를 당기는 행위. 운동은 그저 시위를 놓는 행위. 아무리 잘 쏴도, 당겨놓지 않았다면 의미가 없다.
처음 듣는 내용은 아니다. 체감상 최근 2년 간, 한국의 운동 트렌드도 많이 변했다. 과거에는 끈기, 집념, 강도를 중요시 했다면, 요즘은 편안함, 꾸준함, 마인드의 가치가 대두됐다.
아, 그런데 다르다. 분명히 책에서 읽고 영상으로 본 내용인데 다르다. 이곳 케냐에 직접 와서, 선수들이 훈련하는 곳에 앉아, 코치님과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나눴다. 방금 겪은 2시간이, 인생 최고의 강의가 될 듯 하다. 까먹을 수가 없다.
#케냐인은 유전자를 타고났잖아
코치님은 재능보다 노력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나는 반박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한다고. 케냐인의 재능이, 그들이 세계최고인 이유라고!
다시 반문하셨다. 이텐마을에서 있었던 모든 시간 동안, 한 번이라도 거리에 달리는 사람이 없었던 적이 있냐고. 음… 없다. 매일 매시간 누군가 달리고 있었다.
이것도 좀 이상하다. 텍스트로만 봤을 땐 쉽게 반박할 수 있는 내용인데, 뭔가 직접 들으니까 납득이 된다. 내 눈으로 그동안 봐와서 그런가.
#규율에 관한 이야기
학생들을 위한 식당. 사실 이곳은 정크푸드에 대한 유혹 자체가 없다.
나는 과거에 체대에 진학하기 위해 체대입시 학원을 다녔다. 입시 도중 학원을 한번 옮겼는데, 이유는 딱 하나. 새 학원의 원장님이 ‘시범’을 보일 수 있는 분이였다. 불룩한 배를 가지고 입으로만 떠드는 게 아닌, 직접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
코치로서의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정석 그 자체.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 강요가 아닌 프로그램에 의해 변해야 한다는 것. 운동이 아닌 마인드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 어떻게 보면 뻔한 내용들. 누구나 말은 그렇게 하지.
‘아우라’라고 해야하나. 한 치의 의심도 들지 않았다. 이 코치는, 말하는 대로 행동해온 사람이다.
#경험에 대하여
‘직접 와보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과 영상으로 접하는 것과, 직접 현지에 와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건 전혀 다른 일이구나. 환경, 그리고 사람.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눈앞에서 마주하는 경험은 내게 뚜렷한 깨달음을 주었다. 그래, 이게 여행의 의미지. 경험의 힘은 말로 다할 수 없지만, 그 무게감은 이렇게 발로 뛰는 순간에만 느낄 수 있다.
[소개글] 서성구는 만 27세로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해병대 장교로 전역한 후, 2024년 7월부터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1,000만원의 예산으로 대륙별로 한 달씩, 총 1년 동안 각국을 여행하며 다양한 도전과 경험을 쌓고 있다. 여행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스탭, 봉사활동 등의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순례길 걷기, 마라톤 참가, 히말라야 트레킹 등 여러 챌린지에도 도전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되는 '성구형의 세계여행'은 서성구의 모험과 도전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각 에피소드는 조금은 긴 글로 구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