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즐겨봤던 만화책 ‘~에서 보물찾기’. 호기심 가득한 꼬마 남자아이를 필두로 프랑스에서, 이탈리아에서, 그리고 이집트에서 보물을 찾는다. 그때 처음으로 접한 피라미드의 모습. 수수께끼 문제를 내는 스핑크스와, 무덤 속 누워있는 미라까지. 신비하고 반짝거리는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고, 만화책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찾아온 이집트. 한국에서 꼬박 반나절을 이동해야 올 수 있는 이곳이지만, ‘피라미드를 꼭 관람해야 하는가?’가 고민이었다. 그저 사람이 만든 거대한 건물이지 않냐는 생각. 과거 파리를 상징하는 에펠탑을 봤을 때, 두바이에 가서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부르즈할리파를 봤을 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어릴 적 품고 있던 순수함도, 지나온 시간 동안 쌓아온 역사적 지식도 없는 나에겐 그저 ‘예쁘고 크다’라는 감상평이 전부였으니.
피라미드도 그러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카이로까지 가서 피라미드 관람 티켓을 끊은 이유는, ‘사람들이 꼭 보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 때문이었다.
#피라미드의 존재 이유
피라미드를 향해 가까이 다가섰다. 층층이 쌓인 흙색 벽돌이 하늘을 찌를 기세로 올라가고 있었다. 벽돌 하나의 높이가 나의 키랑 비슷했으니, 고대 문명의 기술력으로 이걸 어떻게 옮겼나 싶었다. 거대하고 세모난 건물. 확실히 불가사의긴 하다.
그러나 이 감상평이 전부. 그 이상의 감정이 들진 않았다. 가슴 속 느껴지는 웅장함도, 입에서 저절로 나오는 탄성도 없다. 고대의 역사가 눈앞에 그려지지는 않았다고 해야 할까. 피라미드를 둘러 싸고 있는 현대적인 표지판, 표지판을 피해 열심히 포즈를 취하고 있는 관광객들, 이 관광객을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고 있는 현지 가이드들이, 피라미드보다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도 마찬가지. 피라미드 앞을 서성이니, 한 가이드가 말을 걸었다. 정부에서 공식 인증을 받은 전문가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알고 보니 이 또한 상술이었다) 그를 따라 피라미드를 구경했고, 능숙한 리딩에 맞춰 사진을 찍었다. 구경이 끝난 후 가이드에게 팁으로 20파운드를 건넸다. 한국 돈으로 약 600원. 행복한 표정을 짓더니, “저기 작은 피라미드로 가면 내부로 들어갈 수 있어. 공짜야”라고 설명을 해줬다.
작은 피라미드 쪽으로 가니, 정말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좁은 통로. 살짝 겁이 나기도 해서, 입구 앞에 앉아 있던 인상 좋은 아저씨에게 안전한지 물어봤다. “베리 세이프. 노 프라브럼!”.
몸을 숙이고 통로를 따라 내려갔다. 조그만 공간이 나왔다. 사람도 나왔다. 투어 가이드!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공간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후 나의 휴대폰을 달라고 하더니, 열심히 사진도 찍어줬다. 그렇게 다시 팁을 주고 피라미드에서 나왔다. 나오니까 입 앉아 있던 인상 좋은 형님도 팁을 요구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세이프 가드 비용이라고 한다. 선택권이 없다. 이미 가드(?)를 이용했으니까. 팁을 주고 자리를 뜨려고 하니, 사진도 한 장 찍어주겠다고 한다. ‘아, 이런 거구나!’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현지인에겐 중요한 일터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전 세계에서 돈이 굴러오는 곳. 관광객에겐 사진을 남기기 위한 최고의 장소다. ‘내가 이 유명한 곳에 왔다!’. 확실한 이해관계를 느낄 수 있었다.
#이집트의 사람들
카이로에서 피라미드 관람을 마치고 며칠 뒤, 이집트의 경주라고 불리는 룩소르로 넘어갔다. 왕가의 계곡, 여러 가지 신전들, 가장 유명한 미라인 투탕카멘으로 알려진 곳. 구경 후 느낀 점은 피라미드를 봤을 때와 비슷했다.
‘역시 관광 위주의 여행은 나랑 맞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짙어졌다. 그렇게 여행이 지루해질 때쯤, 새로운 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의 행동, 그들과 나눈 대화는 꽤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정말로 나와는 너무 다르구나!
[소개글] 서성구는 만 27세로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해병대 장교로 전역한 후, 2024년 7월부터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1,000만원의 예산으로 대륙별로 한 달씩, 총 1년 동안 각국을 여행하며 다양한 도전과 경험을 쌓고 있다. 여행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스탭, 봉사활동 등의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순례길 걷기, 마라톤 참가, 히말라야 트레킹 등 여러 챌린지에도 도전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되는 '성구형의 세계여행'은 서성구의 모험과 도전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각 에피소드는 조금은 긴 글로 구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