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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형의 세계여행] EP07. 성구형 가출사건

[서성구] 성구형의 세계여행

by 시사 IMPACT 2024. 8. 19.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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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대로 문을 박차고 나갔다. 새벽 2시, 어두컴컴한 해변가를 따라 걸었다.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었다. 차라리 위험한 일을 당했으면 싶었다.

성인이 된 후 처음이다.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화를 내다니!

#여행자의 시점

우리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착해지기도, 악해지기도 한다. 여행을 떠나면 행복한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동시에, 극단적인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나는 언제 무너질까? 너무 궁금했다.

특별한 건 없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수면욕'. 고작 이거 하나에 정신을 놓았다.

물론 다른 이유를 갖다 붙일 수는 있다. 며칠 동안 바쁘게 지냈고, 하필 컨디션이 안 좋기도 했다. 그러나 핵심은 단순하다. 그냥 잠을 못자서 짜증이 났다. 아주 단편적인 원인과 결과.

어이가 없다. 그간 어려운 일은 수도 없이 겪어냈기 때문이다. 대학교는 체대에 군대는 해병대도 갔다 온 녀석이, 고작 잠 하나 못잤다고 무너지다니.

밤은 수도 없이 새봤다. 몇 달 전까지 군인이 직업이었으니까. 당연히, 한 번도 화가 난 적이 없었다. 뭐가 달랐을까?

질문에 답이 있다. '당연히'라는 맥락.

잠을 못자는 게 타당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잠들지 못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화를 냈다. 할 수 있는 행동이 화를 표출하는 것 밖에 없었으니까.

한심하기도, 이해가 가기도 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 화를 내는 방식이 별로였다. 이는 아래의 시점과 연결된다.

#서씨아들 서성구의 시점

우리 아버지는 3명의 형제가 있었다. 동생, 작은 동생, 막냇동생. 심지어 모두 남자! 경상도에서 태어나 IMF를 겪은 4형제의 맏형인 당신. '가부장적'이라는 단어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책임감 하나는 투철했다. 그러나 표현에는 서툴렀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문을 쾅 닫고 방에 들어가 무언의 투쟁을 벌이곤 했다. 보통은 3일. 크게 화가 나면 일주일! 이 기간에 집안 분위기가 싸해졌던 기억이 있다. '나는 절대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했다.

피는 못속이나 보다. 아버지랑 똑같이 행동했다. 화가 났고, 통제력을 잃었다. 쿵쾅거리며 짐을 챙겼다. 무언 투쟁을 하며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하우스 분위기가 싸해졌다. 스탭 중 한 명은 나를 찾으러 밤거리를 헤맸다. 부끄럽다.

#다시 여행자의 시점

큰맘 먹고 떠난 세계여행. '나 관찰하기'라는 목표를 내세웠다. 그런데 이 정도로 빠르게, 뚜렷하게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인상 깊은 날이 생기면 비밀번호로 사용하곤 한다. 예를 들어 0329. 대학교 팀플 발표를 완전히 망쳐버렸던 날. 3년 동안 비밀번호로 사용하니까, 어느새 발표가 특기가 됐다. 혹은 0732. 첫 여자 친구의 생일이다. 불같이 연애하고 불같이 헤어졌다. 덕분에 연애도 특기(?)가 됐다.

240720 성구형 가출 사건. 가방 자물쇠 비밀번호를 바꿔야겠다. 절대 까먹지 말아야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지.


[소개글] 서성구는 만 27세로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해병대 장교로 전역한 후, 2024년 7월부터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1,000만원의 예산으로 대륙별로 한 달씩, 총 1년 동안 각국을 여행하며 다양한 도전과 경험을 쌓고 있다. 여행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스탭, 봉사활동 등의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순례길 걷기, 마라톤 참가, 히말라야 트레킹 등 여러 챌린지에도 도전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되는 '성구형의 세계여행'은 서성구의 모험과 도전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각 에피소드는 조금은 긴 글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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