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바로 바다에 들어갔다. 몸이 뜬다. 둥둥 떠다닌다. 발이 닿지 않는다. 시선을 아래로 돌린다. 파랗다. 세상이 물감으로 가득 차있다.
10m는 족히 넘는 바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깊이. 문제없다. 어른도, 어린아이도, 동네 강아지도 떠다니고 있다. 구명조끼를 입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그래서 나도 몸을 맡겼다. 무작정 들어가서 헤엄쳤다. 된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수영하지 않은 하루가 없다. 오늘도 역시 바다에 몸을 띄었다.
아, 자유롭다.
• 동네 이집트의 작은 마을. 한인 게스트 하우스가 무려 23개. 바닷가를 따라 쭉 펼쳐진 곳. 조금만 외곽으로 나오면 아무것도 없는 곳
• 물가 500ml짜리 작은 물이 150원. 1L는 300원. 택시비 10분 거리 600원.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는 크림 파스타가 6,000원!
• 시간 빵집이 새벽에 문을 열고, 헬스장이 자정까지 영업하는 곳. 낮에는 수영하고, 밤에는 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 항상 깨어있는 곳
#무인도
‘라스아부갈룸’이라는 마을에 갔다. 국립공원을 지정되어 오두막과 바다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자연이다.
말도 안 되는 풍경을 마주했다.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전부.
산호는 무채색이다. 노랑색과 빨간색. 그 사이로 주황색 물고기가 헤엄친다. 떼로 지어 다닌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다. 내가 무섭지 않은가? 함께 유영한다. 저들의 떠다님엔 이유가 없다.
노을을 봤다. 바닷속에 서서 노을을 봤다. 황홀하다. 그리고 별을 봤다. 처음엔 미미했다. 밤이 깊어질수록 또렷해진다. ‘은하수’가 눈에 보이는 거였구나.
모닥불을 피웠다. 다 함께 빙 둘러앉았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세계를 떠돌다가 이집트 다합으로 모인 사람들. 우리는 왜 여행을 시작했을까? 한 명씩 털어놓기 시작했다.
먼저 나의 이야기.
어릴 적, 막연하게 세계여행을 꿈꿨다. 이 꿈을 '언제' 이룰 거냐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의 대답은 '바로 지금'. 학교도 졸업했고, 군대도 갔다 왔다. 돈은 모자라.다 그러나 시간은 충분하니까.
부모님과 약속했다. 21살 때 재수에 실패했다. 아빠가 군대부터 갔다 오라고 했다. 인생 계획표를 만들고 그를 설득했다. 20대 후반까지 목돈을 모아서, 부모님께 세계여행을 시켜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29살이 되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일을 더 하고 싶어 하신다. 그래서 내가 떠났다.
마지막 이유. 생각한 대로 살고 싶다. 나는 부자도 되고 싶고, 유명해지고도 싶다. 이를 위해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SNS라는 무대가 있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팔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세계여행’이라는 키워드로 무대에 서봐야겠다.
그 뒤로 나눴던 각자의 이야기들. 세세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확실한 한 가지가 있었다. 모두 각자의 삶에 충실했고, 결국 행동했다는 것.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용기를 냈고, 떠났고,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
같은 생각을 했고, 같은 행동을 했다. 그런 사람들 속에 내가 있다. 미소를 띄고 있다. 확실하게 행복했다.
동시에, 또 다른 감정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행복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안정적인 상황에서 오는 행복. 아름다운 풍경, 맛있는 음식,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오늘 있었던 무인도에서의 하룻밤이 그러했다.
그리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서 오는 행복. 불안정하고, 힘들고, 그럼에도 끝까지 몰아붙이는 상황.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숙소로 돌아간 뒤, 아프리카 케냐행 비행기를 결제했다.
[소개글] 서성구는 만 27세로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해병대 장교로 전역한 후, 2024년 7월부터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1,000만원의 예산으로 대륙별로 한 달씩, 총 1년 동안 각국을 여행하며 다양한 도전과 경험을 쌓고 있다. 여행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스탭, 봉사활동 등의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순례길 걷기, 마라톤 참가, 히말라야 트레킹 등 여러 챌린지에도 도전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되는 '성구형의 세계여행'은 서성구의 모험과 도전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각 에피소드는 조금은 긴 글로 구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