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성인이 되어 떠난 첫 해외 여행, 한국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가는 데 무려 4일이 걸렸다. 경유지인 카자흐스탄에서 출국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입국할 때 받은 조그만 종이를 아무 생각 없이 쓰레기통에 버렸다. 알고 보니 출국 서류였던 것. 공항 게이트에서 문제가 됐다. 중요한 서류는 아니었지만, 당황해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두 가지 선택지가 생겼다. 첫째는 바로 다음 날 파리로 가는 것. 항공료 120만 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 두 번째는 3일 후 파리로 가는 것. 항공권 변경 수수료 12만 원만 내면 된다. 당연히 후자를 골랐다. 나는 가난하지만 시간 부자인 배낭여행자니까!
동행이자 통역사였던 친구는 먼저 유럽으로 떠났다. 그렇게 시작된 카자흐스탄 혼자 여행. 정보도, 여행 경험도, 영어 실력도 없다. 막막했다.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까딱하면 미아가 될 거 같아서.
먼저 시내에 가서 서류를 발급받기로 했다. 구글 지도에 동사무소를 검색 후 무작정 찾아갔다. 캐리어를 든 아시아인이 동네 동사무소에 들어오니 다들 신기해하며,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그러나 실패. 다음으로 경찰서에 찾아갔다. 무서웠지만 미친 척하며 들어갔다. 그러나 실패.
결국 대사관까지 찾아갔다. 이번엔 문이 닫혀 있었다. 망연자실하며 건물 앞에 앉았다. 한국행 비행기를 알아봤지만 출국 자체가 가능할지 미지수였다. 그러던 중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늦게 퇴근하던 대사관 직원이 나를 발견한 것. 그렇게 첫 번째 문제가 해결됐다.
신기했다. ‘내가 이렇게 적극적이었나?’. 한국에선 음식 주문도 제대로 못할 만큼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내가, 캐리어를 끌고 외국 동네를 돌아다녔다. 무슨 깡인지 경찰서까지 찾아갔다.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생존이 걸린 문제니까!
23년 평생 중 가장 영어를 많이 쓴 날이기도 하다. 정확히는 영어도 아닌 바디랭귀지지만, 아무렴 어떤가. 자신감이 생겼다. ‘그냥 부딪히면 되는구나?’
항상 성장하고 싶었다. 더 나은,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 그러더라. 젊을 때 떠나는 여행만큼 좋은 경험은 없다고. 그래서 막연히 떠났던 배낭여행. 그리고 겪어냈던 카자흐스탄의 하루하루들. 확신이 생겼다. 이런 환경에 나를 던져 놓으면, 뭐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
#5년 뒤, 튀르키예 공항
체크인을 하려고 했는데 기계에서 오류가 났다. 수하물 추가 요금을 내라고 했다. '이미 결제 다 했는데?' 직원에게 물어봤다. 표를 보여달라고 해서 휴대폰으로 캡처해 둔 표를 보여줬다. 직원이 중국어는 읽지 못한다고 했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이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나의 상황을 설명했다. 한국어를 아주 조금만.만 할 줄 아는 직원이었다.
몇 번 다른 직원을 거친 후, 가장 덩치가 큰 직원을 만났다. 턱수염이 목까지 덮인 직원은 1번 창구로 캐리어를 들고 가보라고 했다. 1번 창구에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직원은 다른 직원에게 넘기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 줬다. 타 항공사로부터 정보가 넘어오는 과정에서 수하물 관련 사항이 초기화된 문제라고 깔끔한 설명까지 들었다.
‘그냥 추가 요금 내버릴까…’ 고민하기도 했다. 몇만 원만 내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으니까. 그러기엔 아까웠다. 이것도 다 경험치잖아.
아무튼 문제해결. 이집트로 떠난다, 드디어!
[소개글] 서성구는 만 27세로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해병대 장교로 전역한 후, 2024년 7월부터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1,000만원의 예산으로 대륙별로 한 달씩, 총 1년 동안 각국을 여행하며 다양한 도전과 경험을 쌓고 있다. 여행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스탭, 봉사활동 등의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순례길 걷기, 마라톤 참가, 히말라야 트레킹 등 여러 챌린지에도 도전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되는 '성구형의 세계여행'은 서성구의 모험과 도전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각 에피소드는 조금은 긴 글로 구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