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겨울방학, 학교 동기들과 떠난 베트남 여행. 재밌었다. 캐리어를 끌고, 비행기를 타고, 한국이 아닌 곳을 거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마다 떨렸고, 호텔에서 잠을 자는 것도 설렜다.
이후에도 틈틈히 여행을 떠났다. 갯수로 따지자면 약 10개국. 어떻게 됐을까? 좋았다. 하지만 ‘색다름’은 없었다. 새로운 풍경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같다. 풍경이야 유튜브로 봐도 되고, 음식은 한국에서도 찾아 먹을 수 있으니까. 더이상 ‘여행’이라는 단어가 설레지 않았다. 더 깊은 자극을 갈구하기 시작했다.
새벽 5시, 공항 문을 열고 나왔다. 세상이 갈색이다. 낮고 길게 펼쳐져 있다. 산과 들이 없다. 흙과 하늘만 있다. 아, 산은 있구나, 흙산! 낯설다.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이집트란 곳에 오긴 했구나. 최종목적지인 ‘다합’에 가는 택시에 올랐다.
#다합, 게스트하우스
도착한 시각은 새벽 6시.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이 눈을 비비며 마중을 나왔다. 하얗고 네모난 집. 색이 바란듯 하면서도 깔끔하게 정리된 공간들. 한 달 동안 머물 숙소이자, ‘스태프’로 일하게 될 우리 하우스.
세계여행 출발 10일 전, 급하게 행선지를 바꿨다. 한국과 가까운 몽골에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던 이집트로! 인스타그램에서 ‘스태프를 모집합니다’라는 게시글을 봤는데, 마음이 한 번에 바뀌었던 것. 하우스 사장님이 ‘여행 인플루언서’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이분과 함께하면 내가 원하는 여행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애초에 관광이 아닌, 성장을 위해 떠나기를 다짐했던 나니까.
# 조그맣고 어린 여자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대학교도 졸업하고 군대도 다녀왔다. 그리고 세계 여행을 떠났다. 한국에서는 내가 특이한 편이었다. 스팩 쌓기, 취업, 결혼과는 거리가 먼 선택을 했으니까. 비슷한 길을 걷는 지인이 없었다.
이곳은 이집트 다합의 한인 게스트하우스. 10명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 10명은 계속해서 바뀐다. 여기서는 내가 평범하다. 오히려 얌전한 편인듯 하다. 버스킹을 하며 세계를 돌아다니는 형, 간호사를 그만두고 세계로 뛰쳐나온 친구, 벌써 세 번째 다합을 여행 중인 누님. 그리고, 꿈을 찾아 한국을 떠나온 동생들까지.
세계 여행은 도전이다. 한국에서의 삶과 비교했을 때 많은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나는 남성이다. 덩치도 크고 운동도 꾸준히 했다. 내 몸 하나는 지킬 수 있다. 그래서 용기를 내기 쉬웠다. (물론 총칼 들고 덤비면 도망가야 한다)
신기했다. 이곳에서 만난 조그맣고 어린 여자아이들이 신기했다. '어떻게 온 거지?' 먼저, 우리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H. 조그맣다. 그 몸으로 혼자 아프리카에 가서 봉사활동을 했다, 인도에서 축제도 즐기고, 히말라야도 올랐다. 또다른 아이, 꽃 모자를 즐겨쓰는 K! 더 조그맣다. 대학교를 졸업 후,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다. 지금은 다합에서 더 살아보겠다고 사업을 구상 중이다.
내가 그들의 아버지였다면, 여행을 허락했을까? 모르겠다. '너무 위험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솔직히 뜯어 말리지 않았을까. 아, 그런데 나는 여행을 떠나왔잖아. 어떤 기준에 맞춰 살아야 할까.
새로운 공간과 사람. 여행이 당연시 선사하는 것. 자연스레 고민하다가, 결국 머리가 아닌 몸으로 겪어내는 것. 굳이 여행이여야 한다.
[소개글] 서성구는 만 27세로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해병대 장교로 전역한 후, 2024년 7월부터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1,000만원의 예산으로 대륙별로 한 달씩, 총 1년 동안 각국을 여행하며 다양한 도전과 경험을 쌓고 있다. 여행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스탭, 봉사활동 등의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순례길 걷기, 마라톤 참가, 히말라야 트레킹 등 여러 챌린지에도 도전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되는 '성구형의 세계여행'은 서성구의 모험과 도전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각 에피소드는 조금은 긴 글로 구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