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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형의 세계여행] EP08. 다합을 떠나다.

[서성구] 성구형의 세계여행

by sisaimpact 2024. 8. 26.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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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합을 떠나다 

가야 한다고 말했다. 예정보다 조금 더 빨리.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로 가서 물건을 받아야 한다고 둘러댔다. 하우스 사장님은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별 준비가 시작됐다.

최대한 알차게 시간을 보냈다. 멀리서 보기만 했던 황토색 산에 올랐다. 초록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삭막한 경사. 발을 내딛을 때마다 흙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역시 산은 쉽게 길을 내주지 않았다. 결국 중턱까지만 오르고 내려왔다. 대신, 산을 마주 보고 있는 바닷가로 향했다. 산 꼭대기에서 보려고 했던 해가 수평선 위에 걸려 있었다. 바람이 분다. 생각이 흩어진다. 

블루홀에도 들어갔다. 수심이 120미터나 되는 아득한 바다. 이상하다. 분명 바닷속에 있는데, 바다가 잘 보이지 않는다. 해수면은 짙은 파란색이고, 바닥은 까맣게 내려앉아 있다. 물이 원래 이렇게 짙은 건가 싶지만, 내 눈앞에 있는 손은 또렷하게 보인다. 햇살이 물속으로 들어오다 산란한다. 물로 가득 찬 세상은 마치 오목거울처럼 모든 빛을 바닥으로 끌어당긴다.

게스트하우스를 청소했다. 간판도 달았다. 나무에 못을 박고, 옥상 빨랫줄을 잘라 매듭지어 대문에 걸었다. 우리 하우스, 참 예쁘다. 마지막 날 저녁엔 라면과 참치 김밥으로 마무리했다. 작별 인사는 아주 조용했다. 내겐 딱 맞는 마무리였다. 그렇게 고버스를 타고 카이로로 떠났다.

‘잘 모르겠다’라고 방명록에 적었다. 행복했다는 말로 가득한 하우스 방명록에 물음표를 던졌다. 떠나기 한 시간 전까지도 내 마음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별에 익숙하다고 생각했지만, 마지막은 여전히 서툴렀다. 스스로 선택한 떠남이 이렇게 혼란스러울 줄이야.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꽤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홀로서기

떠나자마자 문제가 생겼다. 휴대폰 데이터가 먹통이다. 일단 버스에서 내렸다. 여기는 카이로의 어디쯤. 차는 많고, 사람도 많고, 정신은 없다. 이 사실 외에는 아는 게 없다. 

우려했던 일이 바로 일어났다. 다합은 아주 안전한 곳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 모든 문제가 타의에 의해 해결되는 곳이었다. 그래서 떠나야만 했다. 문제를 마주해야 했으니까. 내 힘으로 겪어내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결국엔, 모든 문제는 해결될 테니까.

일단 걸었다. 아무 통신사나 찾아가 새 유심을 사려고 했지만, 현재 시간은 오전 8시. 문을 연 곳이 없다. 그렇게 한 시간쯤 헤매고 있을 때, 누군가 말을 걸었다. 앳된 얼굴의 이집트 청년. 일본어와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아시아를 좋아하는 대학생이라고 한다. 유심 문제도 해결해주고, 숙소까지 데려다줬다. 살았다! 

 


[소개글] 서성구는 만 27세로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해병대 장교로 전역한 후, 2024년 7월부터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1,000만원의 예산으로 대륙별로 한 달씩, 총 1년 동안 각국을 여행하며 다양한 도전과 경험을 쌓고 있다. 여행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스탭, 봉사활동 등의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순례길 걷기, 마라톤 참가, 히말라야 트레킹 등 여러 챌린지에도 도전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되는 '성구형의 세계여행'은 서성구의 모험과 도전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각 에피소드는 조금은 긴 글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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