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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형의 세계여행] EP12. 내가 살다 살다 아프리카에 혼자 오다니

[서성구] 성구형의 세계여행

by sisaimpact 2024. 10. 14.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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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케냐야? 

대단한 이유는 없었다. ‘세계 최고를 경험하고 싶다’라는 막연한 생각이 전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생각을 실제로 행동까지 옮겼다는 점

아프리카 중부에 위치한 케냐는 세계적인 ‘마라톤 강국’이다. 스포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마라톤 세계기록 보유자 ‘엘리우드 킵초게’의 나라이기도 하다. 그와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이 훈련하는 케냐의 ‘이텐 타운’, 이곳에 가서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

마라톤에 관심을 가진 건 얼마 되지 않았다. 2년 전 군대에 있을 때 자연스레 구보(달리기)를 접하게 되었고, ‘더 잘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이어지다 보니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까지 도전하게 된 것. 심폐지구력, 근력과 같은 신체적 요소뿐만 아니라, ‘마인드’라는 정신적 요소가 마라톤의 핵심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전역 직전 첫 풀코스 마라톤 완주에 성공했다. 기록은 4시간 남짓. 이 오랜 시간 동안 그저 앞만 보고 달리며, 속으로 수많은 포기를 삼켰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극한을 마주했던 경험. 이미 통제력을 잃은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결승점을 통과한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케냐의 엘리트 마라토너들은 42.195km를 2시간 초반대로 주파한다. 내 속도의 2배. 경이롭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단순히 훈련으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그들의 삶을 직접 경험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아프리카 케냐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흑인이다. 동양인은 내가 유일.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하니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흥겨워한다. ‘아, 내가 아프리카에 왔구나’. 상상했던 경험을 마주한다는 설렘과 ‘아프리카’라는 단어에서 오는 두려움이 공존하고 있었다. 
*첫 여행지였던 이집트도 아프리카 대륙에 속한다. 다만, ‘아프리카’라는 단어가 가진 ‘흑인, 자연, 춤과 노래’의 이미지는 케냐에서 처음 느낄 수 있었다.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일까

 
마라톤 마을인 ‘이텐 타운’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먼저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대형 버스를 타고 300km를 달려 ‘엘도렛’이라는 도시에 간다. 거기서 다시 택시를 타고 35km를 달리면 마라톤 마을에 도착한다. 예상 소요 시간은 약 10시간.

한국으로 치면 부산에서 서울로 버스를 타고 이동 후, 다시 택시를 타고 평택의 시골 마을로 향하는 느낌. 뚜벅이 배낭여행자인 나에게 거리 자체가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문제는 인터넷에 제대로 된 정보가 없다는 것. 그리고 내가 케냐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고민했다.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니까, 그냥 가면 되지 않냐’ 라는 생각. 그리고 은연중에 떠오르는 ‘아프리카는 위험하다’라는 생각. 미디어에서 봤던 아프리카는 항상 ‘불안한 곳’으로 묘사됐다.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 그곳에서 살아가는 흑인 민족들. 

케냐는 아프리카 중 비교적 잘사는 나라에 속한다. 특히 수도인 나이로비는 고층빌딩이 즐비한, 내 머릿속에 있는 ‘도시’라는 이미지에 부합하는 곳이다. 그러나 아무 준비도 없이 무작정 아프리카 시골 마을로 향하기엔 두려움이 앞섰다. 결국 나이로비에서 며칠 간 머문 뒤, 마을로 떠날 시기를 정하기로 했다. 

#한인 게스트 하우스 


그렇게 정해진 케냐 여행 첫 목적지는 나이로비 부촌에 위치한 한인 게스트 하우스. 하루 숙박 가격은 50달러로 케냐의 물가를 고려했을 때 매우 비싼 편이었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한인 여행자들을 만나 정보를 얻고 교류하기엔 최적이라 판단했다. 

조모 케냐타 국제공항에 내린 뒤 택시를 타고 게스트 하우스로 이동했다. 택시 기사가 케냐에 대해 설명하며, “휴대폰을 잘 간수해라”라는 말을 반복했다. 길거리에서 들고 다니면 바로 채간다고, 휴대폰이 너의 전부이지 않냐고 말하면서. ‘이제 진짜 여행이 시작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다 보니 어느새 하우스에 도착했다. 

그리고 들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 오늘 하우스에 다른 배낭여행자가 없다는 것! 계산 오류였다. 하긴, 나 같은 배낭여행자가 아닌 이상 굳이 케냐까지 와서 한인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 필요가 없으니까. 물가도 저렴한데 호텔 가서 자겠지. 

하나 다행인 건, 옆 방에 장기 숙박 중인 60대 한국인 부부가 있었다. 다소 하얀 머리에 인자한 미소를 띤, 그러나 당당한 차림새의 남편분. 친절하면서도 우아한 말투로 하우스에 대해 설명하던 아내분. 

나와 같은 배낭여행자는 아니었기에 실용적인 정보를 얻지는 못했다. 평생 마주쳤던 ‘한국인 어른’이었기 때문에, 여행에서 기대한 순간도 아니었고. 그러나 이 예상치 못한 만남이, 나를 더 깊은 생각으로 이끌었다. 

 


[소개글] 서성구는 만 27세로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해병대 장교로 전역한 후, 2024년 7월부터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1,000만원의 예산으로 대륙별로 한 달씩, 총 1년 동안 각국을 여행하며 다양한 도전과 경험을 쌓고 있다. 여행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스탭, 봉사활동 등의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순례길 걷기, 마라톤 참가, 히말라야 트레킹 등 여러 챌린지에도 도전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되는 '성구형의 세계여행'은 서성구의 모험과 도전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각 에피소드는 조금은 긴 글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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