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소르 여행 이틀 차,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호객인 줄 알고 무시하려던 찰나, 익숙한 단어가 들렸다 “네페르티티?”. 내가 묵고 있는 숙소의 이름. 고개를 돌리니 한 이집트 아저씨가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알고 보니 숙소의 직원이었고, 지나가던 나를 발견한 것!
그렇게 시작된 어색한 동행. 그간 열심히 이집트 거리를 돌아다녔지만, 현지인과 거리를 돌아다니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동네 주민답게 이것저것 아는 게 많았던 그는, 나를 여기저기 데려다주었다. 마치 여러 번 해봤던 것처럼!
그렇다. 아저씨는 우연히 고객을 만난 숙소의 직원이 아니라, 평범한 호객 장사꾼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를 의심하지 못했던 이유는, 너무나도 말끔했던 생김새 때문. (숙소 이름은 찍어서 맞춘 듯하다) 현지 이집트인과 다르게 와이셔츠에 스키니진, 가죽구두까지 빼어 입고 있던 그는, 심지어 두 아이의 아버지였다. 휴대폰으로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줬는데, 근처 상류층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즉, 실제로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가장이었던 것.
성공적이었던(?) 가이드 투어가 끝났고, 아저씨는 자연스럽게 팁을 요구했다. 이집트에 와서 가장 충격이었던 순간. 도대체 왜? 어떤 동기로 나를 속여 돈을 벌려고 한 걸까?
‘호객은 이집트의 문화’라는 말을, 이때부터 정말 ‘문화’로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간 만났던 호객꾼들은 그저 ‘가난하고 인성이 좋지 않은 사람들’로 여겼다. 그러나 부자 아저씨는 가난하지도, 매너가 없지도 않았다. 고급 승용차를 가지고 하는 배달 아르바이트처럼, 그저 심심풀이 겸 용돈 벌이로 보였다. 누군가를 기만하는 행위이기에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보았던 나. 이집트에선 이 또한 ‘인샬라(신의 뜻대로)’라는 말로 무마되는 걸까.
#가이드 지성
여행 3일 차에는 가이드 투어를 예약해 룩소르 서안을 둘러봤다. 피라미드 만큼이나 이집트를 대표하는 다양한 유적들이 산재하고 있었는데, 유적보다 가이드가 더 기억에 남는 이상했던 투어.
가이드 지성은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이집트인이다. 어쩌면 한국인보다 한국어를 잘하는 이집트인. 카카오톡으로 예약을 받았는데, 완벽한 맞춤법과 완벽한 채팅 말투를 보고 한국인 채팅 알바를 쓰는 걸로 착각하기도 했다. 실제로 만났을 때, 매우 이국적인 얼굴에서 50대 한국인 아저씨들이 쓰는 농담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인지부조화가 오기도 했다.
지성은 영어도 원어민 만큼이나 잘했다. 무려 3개 국어 가능자. 그의 직업이 ‘여행 가이드’라는 게 의아했다. 더 전문적인, 더 명예로운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도달할 때쯤, 생각의 화살표는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여행자 성구
한국인 성구. 한국에서 태어나 평생을 한국에서 자란 평범한 여행가. 바깥 생활이 익숙해져 가니, 여행지의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삶에 대해 평가하기 시작했다. 그 평가의 기준은 다름 아닌 ‘나’. 이를 인지한 순간, 참으로 내가 한국인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집트까지 와서 사람을 평가질 하고 있구나.
나는 나를 관찰하기 위해 여행을 나왔다. 새로운 공간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 낯선 문화를 공유해보려고.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욱 면밀히 알아보기 위해. 이집트의 뚜렷한 특색 덕분일까, 혹은 그저 지금까지 받은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나는 아직 참으로 부족한 사람이다’라는 게 명확해져간다. 아무튼 목표를 이루는 중이긴 하구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싶다. 누구는 좋고, 뭐는 나쁘고가 아닌, 그저 ‘그렇구나’ 라고 넘길 수 있는 사람. 조금 더 다양한 문화를 겪으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 보다 넓은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룩소르를 끝으로 이집트 한 달 여행을 마무리했다. 더운 날씨에 낙후된 환경과 상대하기 까다로운 현지인들. 관광지로서 최고의 나라는 아니었다. 그러나 ‘여행지’로서는 최적의 장소였다는 결론. 아무튼, 다음 여행에선 ‘사람’에 집중해보자는 다짐을 했다.
[소개글] 서성구는 만 27세로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해병대 장교로 전역한 후, 2024년 7월부터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1,000만원의 예산으로 대륙별로 한 달씩, 총 1년 동안 각국을 여행하며 다양한 도전과 경험을 쌓고 있다. 여행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스탭, 봉사활동 등의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순례길 걷기, 마라톤 참가, 히말라야 트레킹 등 여러 챌린지에도 도전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되는 '성구형의 세계여행'은 서성구의 모험과 도전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각 에피소드는 조금은 긴 글로 구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