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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실수요자의 좌절

사설·칼럼·인터뷰

by 시사 IMPACT 2024. 9. 9.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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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서울 전경 (자료: 정백호)

최근 은행들이 전방위적으로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규제를 강화하면서 실수요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대출을 받아 집을 옮기려던 1주택자마저 규제에 가로막혀 이사를 갈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금융 당국의 정책이 실수요자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내 집 팔고 전세로 가라는 말이냐”는 분노 섞인 외침은 현재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출 규제가 강화되는 과정에서 실수요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논쟁의 여지가 없다. 은행들은 이미 올해 초 금융당국에 제출한 대출 목표를 상반기 동안 초과 달성했지만, 추가 규제를 위해 내년에는 더욱 엄격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관리를 예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신규 대출을 줄이기 위한 선제적 조치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대출 억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해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입는다면, 과연 이것이 올바른 방향인가를 다시금 물어야 한다.

주담대 만기 축소와 같은 대출 규제는 대출 한도를 줄이고, 이에 따라 실수요자들이 감당해야 할 재정적 부담을 증가시킨다. 특히 연봉 1억원을 넘는 부부조차도 대출 한도가 수천만 원에서 1억원 이상 줄어들고 있는 상황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기고 있다. 금리가 오르고, 만기가 짧아지면서 한 달에 갚아야 할 원리금 부담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결국 실수요자는 주거 안정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마저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금융당국의 대응은 혼선을 더해가고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은행 자율에 맡기겠다”고 한 발언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대출 규제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발언은 명확한 정책 방향의 부재를 드러낸다. 이러한 엇박자는 금융기관들로 하여금 대출 제한에 대한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실수요자들의 불안을 더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실수요자'라는 개념의 모호함이다. 금융당국은 실수요자를 보호하겠다고 하지만, 정작 그 기준이 불명확하다 보니 보호는커녕 더 큰 혼란만 초래하고 있다. 1주택자, 무주택자 구분만으로는 실수요자를 제대로 규정할 수 없다. 집을 옮기려는 1주택자도, 주거비 부담을 줄이려는 무주택자도 모두 실수요자일 수 있다. 실수요자 보호라는 명분 아래 대출을 차단하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실의 개입은 주목할 만하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실수요자가 대출을 받는 데 어려움이 있어서는 곤란하다”며 실수요자와 투기 수요를 구분할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금융당국의 모호한 정책을 명확히 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이 가이드라인이 실수요자의 현실을 얼마나 제대로 반영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단순히 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실수요자의 주거 안정을 위해서는 보다 유연한 대출 정책과 세심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

결국 금융정책은 국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금의 대출 규제 강화가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를 위한 조치라고는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실수요자의 고통은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금융당국은 실수요자의 요구를 경청하고, 보다 현실적인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살 집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 이들이 진정한 실수요자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금융정책의 방향이 재설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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