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케냐에서 유럽으로 넘어가는 루트는 다양하다. 나이로비에서 카타르를 거쳐 가거나, 에티오피아를 거쳐 가거나!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터키의 이스탄불을 거쳐서 가는 건데,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에 위치하기 때문에 티켓이 가장 저렴한 편이다. 비수기 때는 30만 원 대도 가능!
그러나 나의 티켓은 80만 원이었다. 여름 성수기에 급하게 예약했다는 사실과 함께, 당시 24년 8월로 파리 올림픽 시즌이었기 때문이다. 저 80만 원 티켓마저, 그냥 환승도 아닌 무려 3회 환승 노선이었다.
케냐에서 먹은 마지막 식사. 사파리를 함께한 하준이가 만들어줬다.
군적금 1,000만 원을 들고 나온 가난한 배낭여행자인 서성구. 돈을 아끼고 아껴도 모자랄 판에, 올림픽 성수기에 유럽으로 향하는 건 아주 부담스러운 행동이다. 그럼에도 티켓을 질렀다. 돈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 얼른 아프리카를 떠나고 싶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있었던 것 같다.
나는 내 생각만큼 무던한 사람이 아니었다. 내 생각만큼 독립적인 사람도 아니었고. 편안하고 안락한 환경이 필요했다. 한국말로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이집트에서 만났던, 당시 체코 프라하를 여행 중이던 친구에게 가기로 결심했다. (현재는 여자친구가 되었다는 후문)
#비행기 환승 3번
나의 계획은 이러했다. 먼저, 나이로비에서 인도의 뭄바이로 간다. 공항에서 하루를 보낸 뒤 터키의 이스탄불로 간다. 이스탄불에서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로 간 뒤, 마지막으로 체코의 프라하에 도착! 그렇게 시작된 환승 지옥.
먼저 새벽 6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2시에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했다. 미리 체크인을 하고 쉬려고 했는데, 몰랐다. 저가 항공사는 출국 2시간 전부터 게이트를 오픈한다! 그래도 뭐 괜찮았다. 공항 로비에서 시간을 때우다 출국에 성공!
나이로비 조모케냐타 공항으로 가는 길.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다음 도착한 인도의 뭄바이. 여기선 24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인도의 뭄바이 공항은 인천국제공항과 맞먹을 정도로 시설이 좋다. 문제는 와이파이가 공짜가 아니라는 것. 1인당 3시간씩 와이파이를 제공하는데, 나는 24시간을 있어야 하기 때문에… 막막했다.
사실 와이파이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다. 시간이야 가만히 있어도 흘러가는 거고, 보통은 다운 받아온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곤 하니까. 그러나 당시의 나는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였고, 가족&친구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3시간짜리 와이파이를 다 썼다. 슬퍼졌다. 울먹이는 표정으로 고객센터에 갔는데, 나의 비행기 시간이 언제인지 묻더니… 12시간이 넘게 남은 걸 보고 여분 와이파이 티켓을 선사했다! 구세주 등장! 그렇게 뭄바이 공항에서 하루를 보낸 뒤 다음 비행기에 탑승한다.
공항에서 만난 라오스 아저씨. 둘 다 피곤해보인다.
이번엔 터키의 이스탄불. 이스탄불 공항은 이전에 한 번 와봤기 때문에 자신 있었다. 공항의 시설도 좋고, 사람들의 생김새도(?) 훨씬 친근하다. 단점은 1인당 와이파이가 1시간만 제공된다는 것. 14시간을 있어야 하는데…
그러나 역시 방법은 있다. 먼저 나의 번호로 와이파이를 받은 뒤, 가족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휴대폰 인증 문자 날라오면 좀 보내달라고! 그렇게 번호를 돌려가며 와이파이를 충전했고, 공항에서의 하루를 보낸다. 물론 제대로 씻고 자는 건 불가능했지만, 이틀 정도는 괜찮지!
양치와 고양이 세수로 청결(?)을 유지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도착한 부쿠레슈티. 루마니아의 수도인데, 이런 도시가 있는지 태어나서 처음 알았다. 이곳에선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새벽 7시까지 8시간만 보내면 된다. 그러나 이곳이 최악이었다. 다른 공항과 달리 편하게 있을 의자가 없다. 무엇보다, 나처럼 공항에서 밤을 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좁은 공항의 모든 공간이 부산스러웠다. (작은 공항에서 당연한 일이지만)
날밤을 새웠다. 다시는 3번 환승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순간. 안 그래도 지쳐있었던 몸과 마음이,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렸다. 젊을 때는 고생도 사서 한다지만, 이런 경험은 굳이 필요 없겠다는 결론! 그렇게 나는, 72시간에 걸친 3번의 환승 끝에 친구가 있는 체코의 프라하로 향한다.
[소개글] 서성구는 만 28세로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해병대 장교로 전역 후, 2024년 7월부터 세계여행을 떠났다. 이집트, 아프리카 케냐, 유럽을 거쳐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행한 그는, 현재 미국 자전거 종주를 준비 중이다.
매주 연재되는 '성구형의 세계여행'은 서성구의 모험과 도전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각 에피소드는 조금은 긴 글로 구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