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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형의 세계여행] EP27. 케냐 끝, 나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서성구] 성구형의 세계여행

by sisaimpact 2025. 2. 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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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마을

사실 나는 마라톤을 좋아하지 않는다. 잘 달리고 싶은 거지, ‘마라톤’이라는 스포츠에 대해 깊게 알고 싶은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마라톤이라는 스포츠를 통해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 뿐.

그래서일까? ‘케냐의 마라톤 마을’이라는 문장 하나만 들고 찾아간 이텐 마을, 1달을 버티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2주 만에 도망쳤다. 거리에서 일상처럼 달리는 선수들, 마라톤 코치와의 만남, 떠나기 직전 중학생 선수들과 같이 달렸던 순간까지. 분명 색달랐다. 분명, 원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왜 도망친 거지? 경험하는 것과, 살아내는 것은 다른 영역이었다. 내가 이곳에서 정말 온전하게 살아내려면, 뭐가 필요했을까. 마라톤을 조금 더 좋아했으면 좋았으려나.

전혀 모르겠다. 이텐 마을을 떠나온 지금까지도 명확히 정의되지 않는다. 나도 내가 뭘 하고 싶었던 건지 잘 모르겠다!

#아프리카 친구 

헬스장 관장이자 유일한 친구였던 스왈리. 이텐 마을을 떠난 지금까지도 종종 연락이 온다. 그런데… 답장하기가 꺼려진다. 솔직히 조금 귀찮다. 더 깊은 관계가 될 가능성이 없으니까.

이텐 마을 생활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내가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던 것. 조금만 더 그들의 입장에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하루를 보냈다면 나의 여정이 꽤 달라지지 않았을까. 

실제로 내가 마을을 떠나기 직전, 정확히는 마을을 떠나기로 했다는 소식을 알리기 전에, 스왈리가 새로운 제안을 했었다. 며칠 뒤에 부모님 집에 내려갈 예정인데, 같이 가는 게 어떻겠냐고. 정말 말도 안 되는 경험이지 않나. 

실력 부족이다. 내가 조금 더 노련한 여행가였다면 이야기가 달라졌겠지. 혹은 가난한 배낭여행자가 아닌, 부유한 배낭여행자였다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면 좀 괜찮지 않았을까. 내가 가진 휴대폰과 노트북, 까지것 줄 수 있지. 잃어도 상관없잖아. 

아닌가. 부유한 배낭여행자라면, 굳이 이텐마을까지 찾아갈 이유가 없었을 거 같다. 찾아갔더라도, 외국인 전용 고급 시설에서 외국 선수들과 시간을 보냈겠지. 현재의 나이기 때문에 겪을 수 있었던 경험을 겪어낸 것 같기도. 역시, 잘 모르겠다!


#사파리 투어

편안했다. 익숙한 친구들과 함께, 가이드의 투어를 따라, 정해진 곳을 돌아다니는 것. 영화에서만 봤던 야생동물부터 아프리카에서만 볼 수 있는 드넓은 자연까지 모조리 만끽했다. 아주 행복하고 기억에 남는 순간.

다음에 다시 케냐에 돌아온다면 혼자 오진 않겠지. 지금이야 젊은 배낭여행자로 혼자 왔지만, 다음엔 부모님이나 배우자와 함께 오지 않을까. 그땐 딱 좋을 거 같다. 일단, 안전하니까. 불확실하지 않으니까!

사파리 투어에 대한 소감은 딱 여기까지. 분명 즐거웠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흔들어 놓지는 않았다. 입체적인 느낌보다는, 평면적인 사진 한 장의 느낌. 그러니까, 막 가슴이 두근거리고 생각에 빠져들고 하지 않는다. (이텐에서의 경험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렇다면 나는 불확실성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그건 또 모르겠다. 결국 이 모든 경험은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케냐는 즐겁고, 외롭고, 복잡했다. 호기심과 불안함 속에서 나를 지탱하고 정의하려 애쓰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여행이 끝난 지금, 여전히 내가 무엇을 원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질문들을 품고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답을 찾을 수 있겠지.

 


[소개글] 서성구는 만 28세로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해병대 장교로 전역 후, 2024년 7월부터 세계여행을 떠났다. 이집트, 아프리카 케냐, 유럽을 거쳐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행한 그는, 현재 미국 자전거 종주를 준비 중이다.

매주 연재되는 '성구형의 세계여행'은 서성구의 모험과 도전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각 에피소드는 조금은 긴 글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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