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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트럼프 이재명 합의.. 동맹의 새로운 장인가, 주권적 균형점 상실의 시작인가?

사설·칼럼·인터뷰

by 시사 IMPACT 2025. 11. 17.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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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지난 13일 백악관이 발표한 팩트시트 화면 캡쳐

지난 11월 13일 공개된 도널드 J.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재명 대한민국 대통령의 공동 설명자료(Joint Fact Sheet)는 한미 동맹의 새로운 시대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 문서는 단순히 외교적 수사를 넘어, 한국의 안보, 산업, 심지어 금융 주권까지 미국의 전략적 구도에 깊숙이 통합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어 냉철한 평가가 필요하다.
이 합의는 한국이 얻어낸 확장 억제력 강화와 관세 불확실성 해소라는 '빛'을 제공했지만, 동시에 금융 자율성 제약과 산업 종속 심화라는 '그림자'를 내포하고 있다. 한국은 이 양면적 합의를 통해 무엇을 얻고 무엇을 내어주었는지, 균형 잡힌 시각으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동맹 현대화의 '빛'.. 안보 강화와 경제적 예측 가능성 확보

이번 합의는 미·중 전략 경쟁 시대에 한국의 생존에 필수적인 안보와 경제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1. 확장 억제 및 전략 자산의 제도화

북한의 핵 위협이 고도화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핵 능력을 포함한 확장 억제를 재확인하고 핵협의그룹(NCG)을 통해 협의를 심화하기로 한 것은 가장 확실한 안보 이득이다.

여기에 더해, 미국이 한국의 핵 추진 공격 잠수함(SSN) 건조를 승인하고 민수 원자력 프로그램을 지원하기로 한 것은 군사적 억제력 강화에 있어 전략적 돌파구로 보인다.

비록 연료 공급과 기술적 승인은 여전히 미국의 통제 아래 있지만, 한국 해군력 현대화의 장기적인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한국이 GDP의 3.5%를 국방비로 지출하고 향후 580억 달러(장비 구매 250억 + 주한미군 지원 330억)를 동맹에 기여하기로 한 약속은, 트럼프 행정부의 '공정한 분담' 요구에 응함으로써 주한미군 주둔의 장기적 안정성을 예산 구조 속에 제도적으로 고정시킨 조치라고 할 수 있다.

2. 관세 불확실성 완화 및 시장 접근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했던 전면적인 고율 관세 부과 위험 속에서, 한국산 자동차, 부품, 목재 등에 대한 Section 232 관세율을 최대 25%에서 15%로 인하하기로 합의한 것은 시장 불확실성을 상당 부분 걷어냈다.

비록 기존 KORUS FTA 체제보다 불리한 관세 장벽이지만, 미국 중심의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흐름 속에서 전략적 협력의 대가로 한국 기업들이 안정적인 무역 환경을 일정 부분 확보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하다.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에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약속한 것은 미국의 공급망 재편 속에서 한국의 위상을 인정받은 결과이다.

주권적 자율성의 '그림자'.. 금융 통제와 산업 종속의 심화

공동 설명자료는 안보 이익의 이면에 한국의 경제 및 금융 주권에 대한 미국의 통제력을 제도적으로 강화하는 조항들을 포함하고 있다.

1. 금융 주권의 제약과 달러 유동성 통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외환 시장 조항이다. 한국이 연간 200억 달러 이상을 시장에서 조달할 의무가 없다는 문구는, 언뜻 재량권을 보장하는 듯 보이나 실질적으로는 한국의 달러 유동성 확보에 명확한 상한선을 긋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곧 한국은행이 환율 방어를 위해 시장에 대규모로 개입하거나, 위기 상황에서 독자적인 달러 자금 조달을 할 수 있는 자율성이 크게 축소되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시장 불안정 시 지원 요청에 대해 미국이 '선의(in good faith)로 검토'하겠다는 단서는 지원 의무가 아닌 재량권을 명시한 것으로, 한국의 금융 정책이 미국 재무부의 감시와 승인 체제 아래로 편입될 수 있다는 강력한 신호이다.

2. 산업 시스템의 미국 기준 편입 가속화

조선, 원자력, 농업 등 핵심 산업에서 한국의 기술과 자본이 미국 시스템에 구조적으로 편입되는 모습도 포착된다.

조선 산업에서 한국 조선사의 1,500억 달러 투자는 미국의 해양 패권 복원, 즉 미국 조선소의 재건을 한국의 기술력과 자본력으로 지원하는 형태이다. 한국은 미국 시장 진출 기회를 얻는 동시에, 수십 년간 축적한 핵심 기술과 생산 시스템을 미국 산업 구조에 공유하는 기술 종속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농업 및 통상에서 한국의 농업 생명공학 제품 승인 간소화, 미국 원예/축산물 전담 데스크 설치 등은 미국 농산물에 대한 시장 접근성을 극대화하여 식량 주권 및 국내 농업 보호 정책의 자율성을 약화시킬 우려가 크다.

'자율적 동맹국'으로서의 시험대

이번 공동 설명자료는 트럼프 행정부가 군사적 점령 없이 한국의 안보, 경제, 금융 시스템을 미국 중심의 전략적 지배 구조로 묶어 넣으려는 장기 전략의 결과물이다.

한국은 안보 위협으로부터 확실한 방패를 얻었지만, 그 대가로 국가적 자율성의 일부를 포기하는 선택을 했다.

이번 합의는 트럼프라는 개인이 아닌, 미국이라는 국가가 요구한 동맹 재편 비용이다. 중요한 것은 이 구조가 이미 법적, 행정적 틀 안에 고정되어 있어, 앞으로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되돌리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한국 정부의 과제는 명확하다.

금융 주권 제약(달러 상한)에 대한 구체적인 위기 대응 플랜을 마련하고, 외환 시장의 불안정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조선, 반도체 등 핵심 산업에서 미국의 시스템 편입을 단순한 종속이 아닌, 첨단 기술 공동 개발 및 글로벌 표준 선점의 기회로 전환하는 능동적인 산업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안보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자주국방 역량 강화를 지속하고,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자율적 행위자'로서의 목소리를 높여 합의 이행 과정에서 국익의 균형점을 찾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결국, 이번 합의는 한국이 '동맹의 안온함'을 선택한 대신 '주권적 자율성의 불편함'을 감수한 결정적 분기점이다. 이제 한국은 이 새로운 틀 속에서 주권적 균형점을 어떻게 확보하고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어려운 시험대에 놓여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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