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무안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인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관계자들이 방위각 시설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2024년 12월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는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이었다. 이 사고는 단순한 항공 재난을 넘어, 한국 사회의 항공안전 체계와 사고 조사 방식, 그리고 정보 비공개 관행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냈다.
참사 발생 이후 5개월이 지났지만, 진상 규명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유족들은 "블랙박스·교신 내역 공개하라"고 촉구하며,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정보 일부만 제한적으로 제공하고 비밀서약서를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유가족 법률지원단과 민변 광주전남지부는 "조류 충돌 시점과 복행 시점의 선후 관계조차 명확하지 않다"며 독립적인 수사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에 따라 유족들은 오는 13일 사고 책임자 고소를 예고했다.
그 사이 무안공항을 중심으로 한 항공 안전 대책이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8월까지 활주로를 3160m로 연장하고, 기존 콘크리트 둔덕을 경량 철골 구조물로 교체하기로 했다. 또한 조류 탐지 레이더, 열화상카메라, 드론 등 첨단 장비를 도입하고, 조류 감시 인력도 세 배로 늘린다. 안전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환영할만한 변화지만, 이 모든 조치가 '참사 이후'에야 시작됐다는 점에서 유족들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다.
한편, 인터넷상에서는 참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유족들을 모욕한 허위 정보가 확산됐다. 검찰은 유가족을 “전문배우”라고 주장하거나 사고 자체를 “CG 조작”이라 단정한 유튜버 등 14명을 기소했으며, 그중 1명은 구속기소됐다. 대검은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예방하기 위해 허위 사실 유포에 엄정 대응할 것”이라 밝혔다.
한 사건이 남긴 물리적 상처는 인프라 개선으로 복구할 수 있다. 그러나 신뢰와 존엄이 훼손된 자리에 진실이 빠진 채 복구된 안전은 온전한 재발방지책이 될 수 없다. 참사의 원인이 조류 충돌이든 기계 결함이든, 정확한 진상규명 없이는 이번에 새로 설치되는 모든 장비와 대책이 공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진실에의 접근은 유족들의 권리이자, 같은 재난의 재발을 막는 유일한 길이다.
무안국제공항의 안전은 장비의 첨단화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구조적 투명성과 독립적인 조사 시스템, 피해자 중심의 정보공개가 수반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적 대응'이 아니라 '신뢰 회복'이다.